사진=KBS 1TV '역사저널 그날'

[굿데일리=이성웅 기자]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데 김일성의 남침 계획은 독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배후에 있던 인물은 바로 당시 공산주의 진영의 최대 지도자 스탈린이었다. 남침을 원했던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여러 번 허가 요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만다. 그런데 1950년 봄, 스탈린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탈린의 시선으로 본 한국 전쟁!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결국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한 스탈린.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것은 마오쩌둥의 동의를 받아오는 것! 서둘러 마오쩌둥을 만난 김일성은 스탈린의 뜻을 전한다. 하지만 이를 쉽게 믿을 수 없었던 마오쩌둥, 그런 그를 위해 스탈린은 친히 전문까지 보내온다. 스탈린의 전문을 받고 마오쩌둥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과연 스탈린의 전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에 전쟁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던 노회한 스탈린의 책략을 살펴본다.

마오쩌둥의 한국 전쟁 참전 동의로 마침내 전쟁이 시작됐다. 스탈린은 전쟁 허가 후 북한에게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덕분에 북한군 10개 보병사단이 무장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독소전쟁에 참여했던 소련의 베테랑 군사고문도 20명가량 파견했다. 그런데 소련의 이와 같은 북한 지원에는 대원칙이 있었는데 바로 ‘절대 들키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 전쟁에서 소련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노력했던 스탈린. 그들이 이토록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위장과 암호 속에 숨겨진 그들의 실체가 공개된다.

개전 후 공격 3일 만에 한강 이북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하지만 다시 3일 동안 그곳에서 지체한다. 그사이 시작된 유엔군의 반격.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전세는 역전된다. 하지만 약 한 달 뒤인 10월 19일, 30여만 명의 중국군이 입북하며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국군의 작전권은 유엔군에게, 북한군의 작전권은 사실상 중국군에게 넘어간 상황. 국제전 양상을 굳혀가는 한국 전쟁. 강대국들의 개입 속에서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장기화됐다.

남은 건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는 것, 하지만 공산주의 진영의 여러 이해관계 속에 휴전회담은 쉽사리 진행되지 않았다. 그때 전쟁의 향방을 바꾼 사건이 일어나는데...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한국 전쟁과 스탈린 이야기는 6월 25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15회 “6.25 기획 – 스탈린의 전쟁, 김일성 남침을 허락받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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