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가해남성의 혀를 절단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최모 씨(76)가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부산지법 형사5부(권기철 부장판사)는 지난해 최 씨가 제기한 재심 청구를 재심 이유가 없어 기각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해 8월, 12월 두 차례에 걸쳐 심문을 진행한 결과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56년전, 당시 18세이던 최씨는 성폭행 하려던 A 씨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1.5㎝ 가량 절단했다. 

당시 검찰은 최 씨를 중상해죄로 구속기소 하고, A 씨는 특수주거침입 및 특수협박죄로 기소했다. A 씨가 말을 하지 못하는 불구가 됐음을 전제로 중상해죄를 적용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최씨의 행동이 A씨가 성폭력을 시도하게 된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최씨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가해남성이 받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운 처벌이었다. 

50여년을 고통에 시달렸던 최씨는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용기를 얻어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고 2020년 5월6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최 씨는 A 씨가 수술을 받고 어눌하지만 말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고 “재판부의 판결이 잘못됐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재심 재판부는 “최 씨 측이 제기한 증거만으로는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재심대상판결의 범죄사실인 중상해의 경우 발음의 현저한 곤란인데 전문가인 의사가 만든 상해진단서 등 객관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씨 측 주장처럼 A 씨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보이지만, 언어능력에는 실제로 상당한 장애가 발생했다”며 “중상해죄 구성요건인 불구의 개념이 반드시 신체 조직의 고유한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재판부는 법률의 해석이나 적용의 오류만으로 재심을 개시하지 않으며 검사의 불법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성차별 인식과 가치관 변화 등에 비추어 볼 때 반세기 전 사건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직무상 범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도 기각 이유로 꼽았다.

다만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당시 법원의 성차별적 인식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고 회자됐던 ‘혀 절단’ 사건의 바로 청구인이 반세기가 흐른 후 이렇게 자신의 사건을 바로 잡아달라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달라고, 성별 간 평등의 가치를 선언해 달라고 법정에 섰다”며 우리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러한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답변한다.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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