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애도믈결리 쏟아지고 있다.

근육이 굳어가는 루게릭 병을 앓았던 호킹 박사는 투병 중에도 연구에 몰두해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과학적 업적을 쌓아왔다. 

AFP, 로이터통신 등 전 세계 언론들은 호킹 박사의 자녀들이 영국 캠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그의 죽음을 확인해 줬다며 스티븐 호킹의 타계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물론 각국 지도자들은 영국 출신의 호킹 박사 타계에 "위대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애도를 표시했다.

자녀들은 성명을 통해 부친의별세소식을 알리며 "그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다"며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1942년생인 호킹은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블랙홀과 관련한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 기여했으며,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블랙홀과 관련된 우주론 등 각종 우주의 근원을 밝히는 연구에 기여한 호킹 박사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로 손꼽혔다. 

1959년 17살의 나이로 옥스퍼드대에 입학한 그는 21살에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른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1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호킹 박사는 몇 년 밖에 살지 못할 거란 의사들의 진단에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컴퓨터 음성재생 장치 등의 도움을 받아 연구활동을 이어갔다.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대 수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한 호킹 박사는 1988년 발간한 '시간의 역사'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호킹 박사는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로 재직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다.

루게릭병이라는 전신마비의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음에도 블랙홀 증발, 양자우주론 등 현대물리학에 3개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뉴턴과 아이슈타인의 뒤를 잇는 천재 물리학자로 손꼽힌다.

블랙홀과 관련된 우주론과 양자 중력의 연구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신의 이론 및 일반적인 우주론을 다룬 여러 대중 과학 서적을 저술했다. 

대표적인 저서는 1988년 발표한 '시간의 역사(History of Time)'다. 이 책은 선데이타임즈 베스트셀러에 237주간 이름을 올리며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외에 '블랙홀과 아기 우주',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호두껍질 속의 우주',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등의 저서가 있다.

호킹 교수는 생전에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1990년 9월 주간지 '시사저널'의 초청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해 서울대와 신라호텔에서 '우주의 기원'과 '블랙홀과 아기우주'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어 2000년 8∼9월 고등과학원과 서울대 초청으로 세계 우주과학학술대회(COSMO-2000)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10박 11일 일정으로 다시 찾았다. 이때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자신의 병에 대해 "일찍 죽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았다"면서 "그래서 시간은 나에게 언제나 귀중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호킹은 지역의 자선 버스 캠페인에 참여하고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민영화에 반대하는 등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관련해 "AI 기술은 인류 문명사에서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지도 모른다" 등의 심각한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난 현대언어 전공자 제인 와일드와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뒀지만 1991년 이혼했다.

이어 1995년 자신의 간호사인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지만 11년 만인 2006년 헤어졌다. 호킹 박사가 두 번째 부인으로부터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와 경찰이 조사했으나 호킹 박사는 이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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