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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순신 장군 처럼 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이순신 장군 처럼 되지 못하는가?
  • 양하얀 기자
  • 승인 2017.12.06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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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연구소 류덕기교수

우리가 임진왜란을 대할 때 분함을 참지 못하는 것은 그 당시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였으나 왜의 침략이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팽배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이 안이한 생각으로 안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에 정보를 캐기 위해 파견한 공식 사신들 이외에도 그 흔히 하던 염탐꾼이라도 보내 보았으면, 일본의 전국시대에 이미 침략 10여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던 신무기 조총이 대륙침략용으로 대량으로 준비되고 있고, 큐슈 지역에서는 다수의 전투선을 건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총의 유효사거리가 약50미터, 화약 장전과 발사까지 2-3분은 소요된다는 조총의 화력을 알아내는 것도, 이러한 제원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활보다 더 열등한 것이었음을 알아내는 데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육지에서의 속전속결의 연전연패는 너무나 훈련을 안시킨 우리 군대와 제승방략이라고 하는 군대 지휘체계가 만들어내 산물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만들어낸 제도와 규범에 얽매이고 앞날을 대비하지 못하고 참사를 맞고 있는 우리 현실로 보면 이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잘사는 원리는 같다고 본다.

당시 전라도의 반쪽 지역만 관할하라는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신 이순신 장군께서는 임관 하자마자 바로 전쟁준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신 것은 유비무환이라는 그 분의 삶의 지혜도 있었지만, 군인의 본분은 실전 대비라는 아주 기초적인 사명감이라고 볼수 있다. 장군께서는 그 이전에는 북방토벌을 담당하는 육군의 장교만 하셨고, 바로 직전에는 정읍현감이라는 행정직에서 전혀 수군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일부 지역 해군사령관을 맡고나서 여타의 4개 수영의 장군들은 하지 않았으나 기본 중에 기본 일들을 하셨다, 본인의 신임 업무파악을 비롯해 수군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우면서, 왜의 동향에 대한 정보수집, 무기체계에 대한 고민, 과거의 다양한 병법의 학습 등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바, 이후 실전이 터지자 그야말로 국가를 구하는 위인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되신 것이다.

당시, 일본의 배의 제작 기술은 우리의 절반도 안되는 단층 소형이며, 큐슈지역에 산재한 연한 삼나무 재질을 쓰고, 마디마디를 못으로 박은, 속도 빠른 배라고 이미 알려져 있었고, 우리 함선은 남해안에 산재한 소나무 재질로 바짝 건조 시키고 못 대신 마디마디를 오늘 레고블록 맞추듯이 끼워 맞춘 2층짜리의 견고한 대형선이며, 밑바닥이 평평한 판옥선들이었다. 또한 우리의 천자총통, 지자총통을 비롯한 화포는 일본군이 가지지 못한 당시로서는 최신예 무기로서 조총의 유효사거리의 대여섯배가 넘는 바, 원거리에서 격전을 벌이면 일본군들은 속수무책인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관련 영화로도 보았다. 이는 임난 이전부터의 왜구와의 전쟁에서 흔히 하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화포 공격은 많은 수의 함선들을 상대할 때는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오직 문제는 칼싸움을 잘하는 왜군들이 우리 배에 접근하여 올라타서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 고려말 잦은 왜구 침략 때부터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었던 바, 여기에서 장군께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배에 뚜껑을 씌워 못과 칼을 꽂아 접근을 못하게 한 것이 거북선의 원리이었고, 이는 이미 조선초 태종 때부터 발명이 되어있던 바,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제작을 해 본 사람이 장군이셨던 것이다. 평소 군인들이 해야하는 실전을 가상한 병사들의 훈련도 매뉴얼대로 전쟁발발 하루 전까지 충실히 시켜 이후 실전에서 그대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라든가, 수군의 역할이 북상하는 왜군의 서해안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라는 본래의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해 냄으로 인해 전쟁을 소강상태로 만들고, 이로서 나라의 존립까지 지켜내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는 말과 같이 장군은 평소 삶에서 자기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열심히 자기소임을 다하는 한 국민으로서의 자세이었고, 당시 그렇지 못했던 조선의 왕과 신하들은 임무해태와 직무유기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항상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었음이 임진왜란의 교훈에서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단지 그러한 성실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위인으로 부상하느냐의 관건은 본인과 시대적 배경과 후대 역사가 만들어내는 속성임은 틀림없으나, 역사적 위인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조직내에서 기본기에 충실하면 누구나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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