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하고, 고속철도로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하루 만에 업무 처리가 가능한, 요즘과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추수철이 되면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오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봄, 여름 쉴 틈 없이 땀 흘려 마침내 잘 여문 곡식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바야흐로 추수의 계절을 맞아 휴식과 같은 여유로움도 잠시, 요즘과 같이 일교차가 심한 때에는 감기와 같은 호흡기질환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필자는 농촌에서 일하는 농업인들의 호흡기질환에 대해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를 가지고 있고, 공장이나 자동차로부터 나오는 매연도 덜 해서 아무래도 농업인들은 도시인보다 호흡기질환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해도 될까?
 
서구의 연구결과에서는 농부들이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건강한 부분들이 많다고 조사되었고,  전체 암 사망률과 폐암,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낮게 조사되었다. 그러나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과민성 폐렴과 같은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농업인의 호흡기가 일반 사람들보다 좋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 국민의 영양과 건강상태를 전국적으로 조사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와 우리나라의 사망원인통계 자료로써, 농업인이 일반인들에 비해 건강상태가 어떤지를 조사해 보았는데 교육 수준, 연령, 결혼상태, 흡연, 음주상태를 일반인구집단과 같다고 가정했을 때, 농업인의 호흡기질환 유병률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니었지만,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 확장증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40%가 오히려 낮았고, 천식의 경우는 거의 동일한 비율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53%, 만성 하기도 호흡기 질환은 24% 높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농업인의 호흡기는 건강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농업인은 건강하여 호흡기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비율은 낮지만, 나중에 호흡기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더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농업인은 다른 직업에 비해 비교적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것을 감안하면 농업인의 호흡기질환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관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서구의 농부들은 기업과 같은 대규모 농업을 하는 곳이 많고 핀란드의 경우 농업인에게서 발생한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주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5인 이상의 기업농을 제외하고 아직 농업에 의해 발생한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가족 중심의 소규모 농업을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양대학교 농업안전보건센터가 2013년부터 2년간 약 일천여명의 농촌 현장의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만성 폐쇄성폐질환,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농업인들의 호흡기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건강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큰 차이는 아니지만 낮은 것처럼 조사되었으나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체의 규모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조사 결과 자료를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농약을 사용하는 경우 천식 발생의 위험도는 56% 증가했으며 여성에서 축산업이나 꽃 재배를 하는 농업인이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의 위험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농업인은 농기계로부터 나오는 매연, 축사나 비닐하우스와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동물 털, 동물의 분뇨나 비듬에서 나오는 각종 분진과 가스, 꽃가루나 포자 등에서 나오는 알레르기 유발물질 등의 각종 호흡기질환의 위험요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농업인의 호흡기는 적절한 보호구나 기계 환기, 교육에 의한 작업환경 관리와 치료 등에 의해 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만큼, 이제라도 농업인을 위한 활발한 연구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학계와 정부, 그리고 농업인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농업인 건강 증진 활동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양대학교 농업안전보건센터 권순찬 부센터장

저작권자 © 굿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