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말 새로운 온열치료기를 도입한 후 첫 번째로 시술한 환자는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췌장암 말기였던 환자는 온열치료를 통해 애초의 예상보다 훨씬 긴 1년을 살게 됐다.

부산에 새로운 온열암치료기가 급속도로 보급된 계기다.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새로운 분야를 찾아서 환자에게 응용해 도움을 드리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 효과적인 치료로 환자들의 병이 호전될 때면 정말 힘이 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폐암이나 림프종 등 성장이 빠른 암에서는 온열치료로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연구하는 일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온열치료는 의사들이 잘 모르는 분야니까.

어떻게 하면 효과를 높일지 계속 연구해야 합니다. 결국 명의란 끝없이 노력하는 의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한 시점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려면 절대 노력을 멈춰서는 안된다.

내게는 2개의 직함이 있다. 하나는 세계온열암협회 아시아 대표부회장, 다른 하나는 대한온열암연구회 제2대 회장이다. 국내에서 온열암치료에 대한 부분이라면 누구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온열암치료는 온열치료기로 암세포에 열을 가해 암을 치료하는 것으로 사실 1990년대에 각광받았던 암치료법이다. 그런데 암조직뿐만 아니라, 열을 같이 쐬게 되는 다른 건강한 세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 밝혀지면서 조금씩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2011년부터 온열암치료가 다시 등장했다. 고주파를 이용해 열을 내면서도 이전에 지적됐던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새로운 온열치료기가 등장한 것이다. 온열을 이용해 암세포를 치료한다는 시스템은 그대로인 대신, 열을 내는 방식에만 변화를 주었다.

복음병원에 온열치료기가 처음 도입된 것이 1990년. 그 이후 상당수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임상경험을 해왔다. 온열치료기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도입한 온열치료기의 역할은 기대 이상으로 컸다.

매일 20~30건씩 온열치료기 3대를 내내 가동해야 했을 정도로. 2011년 새로운 온열치료기를 도입하고 약 3년, 벌써 4~5천 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 5만 회가량의 시술을 했다. 구형 온열치료기를 사용했던 1990년~2011년 20년 동안 총 3만 회 시술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새로운 온열암치료는 환자 1명당 12~36번 정도의 시술을 받게 되지만, 전과 달리 부작용이 없어 아무리 많이 받더라도 몸에는 이상이 없다. 환자 중에는 2년 6개월 동안 150여 번 시술을 받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온열암치료가 어디까지나 부작용 때문에 방사선치료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때 선택하게 되는 보조적인 치료법이라는 점이다.

내 주전공이기도 한 방사선치료는 다음의 3박자가 맞아야만 하는데, 일단 그 첫 번째가 기계다. 한 대에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호가하는 기계들은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트루빔, 사이버나이프, 토모테라피, 양성자치료기 등. 하지만 어떤 특정한 기계가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기계마다 특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암의 종류에 따라서, 혹은 고정된 부위인지 움직이는 부위인지에 따라서도 치료기계가 달라진다. 다음이 소프트웨어다. 2차원적인 치료인지 3차원적인 치료인지에 따라 치료결과가 달라지므로 운용방식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근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은 ‘어떤 기계인가’가 아니라 ‘영상추적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마지막이 어떤 의사를 만나는가인데, 의사에 따라 치료효과가 많이 달라진다. 암세포에 얼마 동안 방사선을 쏘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전적으로 의사의 판단을 따른다. 그만큼 의사가 신중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과거에는 암을 마주할 때 ‘어떻게 암을 고칠 것인가’에 주로 주목했다. 그러나 현재 암에 대한 주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암이라는 질병을 알고도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다. 부작용 없이 암을 치료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졌다. 그래서 현대의학에서 정말로 중요해진 것이 협력이다.

방사선치료든 온열암치료든 판단은 의사가 내리지만, 실제로 기계를 다루는 것은 직원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다행히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들은 다학적시스템이라 부르는 협력 마인드가 철저히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인 명의는 재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자기 분야의 학문이 최고인 것은 기본, 여기에 인품을 더해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주기 위해 다른 분야의 의사들과도 협력을 잘하는 사람을 명의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올해로 내 나이는 62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명의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적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국 방사선종양학회 등에 가면 젊은 의사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참여했고, 아침 7시부터 모든 일정이 끝날 때까지 강의를 전부 듣는 것을 기본으로 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고 느낀다. 아마 이 부족함을 채우고 더 좋은 의사가 되기까지 앞으로도 갈 길이 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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