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의사는 환자의 병을 잘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병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겁니다.

어디가 아픈지, 그게 어느 부위인지 잘 듣고 나서 그 다음 진단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맞는 치료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소화기내과 의사가 전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의사의 의미에 가깝다고 보고 있습니다.

의사는 실력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야겠지요.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우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장기려 박사님의 후예니까요. 그런 정신들이 병원 곳곳에 많습니다. 저는 요즘 병원들이 영리화되어 가는 것이 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단위 병원들이 생겨나면서 어쩔 수 없이 영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지만, 정말 영리추구만을 하는 것이 옳은 걸까요?

지방 의료기관 의사로서 정말 안타까운 일이 있다. 암 환자들이 발병 이후 수도권 병원을 찾아 올라가면서 수술 시기를 놓치거나 경과가 오히려 좋지 않은 사례를 볼 때다. ‘서울 의료기관의 수준이 더 높을 것이다’라는 사람들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현재 위암이나 대장암 수술은 전국적으로 거의 표준화되어 있다.

내가 주로 하는 역할은 위암이나 대장암의 경우에 내시경으로 암을 수술하는 것인데, 내시경적막화박리술을 통해 부분만 제거하는 방법을 말한다. 췌담도 내시경의 경우 굉장히 좋은 기계가 내시경실 안에 구비되어 있다.

보통 췌장도내시경을 하려고 하면 영상의학과로 가지만 우리 경우엔 센터 안에 기계가 들어와 있다. 환자들이 더 편하고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어 시설적인 면에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만약 위나 대장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는 외과팀으로 보낸 뒤 항암 치료를 내가 맡는다. 그런데 이때 내시경을 통한 수술이 아닌 외과 수술만 하려고 하면 다들 서울로 가려고 한다.

물론 한편으로는 환자들이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서울에 꼭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드문 질환을 집중해서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서울에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암이나 대장암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암 전문 병원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 복음병원이다. 위암이나 대장암 수술을 하는 팀들이 오랫동안 역사를 이어오면서 다양한 사례도 많이 축적되어 있다. 오히려 이 분야만 계속해서 하고 계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직장암 환자 중에 직장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경우가 떠오른다. 서울로 올라갔지만 결국 항문을 못 살리고 내려온 걸 봤다. 물론 막상 수술을 해보니 상황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서울이 반드시 더 의술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런 중요한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20년 넘게 복음병원에서 일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특히 항암 치료를 하다 보면 같은 분을 오래 보게 된다. 그 중 결과가 좋은 분을 생각하면 내 가족의 일인 듯 기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알고 보니 담당하는 환자가 초등학교 친구의 아내여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환자는 현재 항암 치료를 중단했고, 3년째 지켜보는 중이다. 다행히 가족들의 지지와 본인의 적극적인 태도로 상태가 나빠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물론 암이라는 병이 정복하기 힘든 병이기에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도 많다. 4기에 이르러 어쩔 수 없이 부산에서 항암 치료를 했던 19세 환자는 항암 치료에 대한 반응이 좋아 30개월 정도를 더 살았다.

아직도 아이의 부모님과 종종 연락이 닿는데 그때마다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도록 추억을 만들어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신다. 수명을 좀 더 연장해주는 것만큼이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계신 분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말해서 소화기내과는 레지던트 시절을 생각하면 썩 재미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스태프가 되고 난 뒤에는 교수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척 많아진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내과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단을 해야 하는데, 사람 몸 안에는 간, 콩팥, 장 등 장기가 몹시 많아 상당히 진단하기 어렵다. 환자 분이 배가 아파서 왔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제대로 진단해내려면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수가 되고 나니 소화기내과야말로 정말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주변에 항암 치료를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으로 안다. 치료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현재는 항암 치료 기술이 정말 많이 개발되고 좋아졌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다. 항암 치료는 가까운 곳에서 받으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위암·대장암에 관해서라면 의심 없이 고신대복음병원에 오셔도 좋다는 것을.

 

고신대학교복음병원 소화기내과 박선자 교수

저작권자 © 굿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