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부임' 총영사부터 전세기 귀국 포기한 의사까지... 약배달 봉사 치료 자임

잔류국민 중 코로나19 감염 없어…생업 정상화까진 어려움 예상

우한 탈출 전세기에 탑승하는 우리 교민들
우한 탈출 전세기에 탑승하는 우리 교민들. [출처=연합뉴스]

우한의 지독한 감염확산과 봉쇄조치에도 한국 교민들의 활동은 단연코 빛이 났다.

"우한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느낀 건 한국 사람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우한 주재 총영사관에서 교민 보호 업무를 맡는 정다운 영사는 오는 8일 우한 봉쇄 해제를 눈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정 영사는 세 차례에 걸친 정부 전세기 투입을 통해 총 848명의 교민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실무를 맡았던 이다. 원래대로라면 지난달 임기가 끝나 이미 귀국했어야 하지만 전세기에 가족만 먼저 태워 보내고 아직 우한에 남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예기치 못한 위기 속에서도 사태의 진원지인 우한의 한국인들이 민과 관을 가리지 않고 힘을 모아 두 달이 넘는 봉쇄 기간을 견뎌냈다.

우한 총영사관과 교민들에 따르면 우한에 남은 우리 국민 중 봉쇄 기간 중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123일 우한이 전격적으로 봉쇄된 이후 가장 극적인 순간은 우한과 인근의 후베이성 지역에 있는 우리 교민들을 대거 전세기에 태워 한국으로 돌려보낸 때였다.

우한 봉쇄 직후부터 우한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해 의료 체계가 사실상 붕괴하면서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지난 130일과 31, 212일 세 차례에 걸쳐 전세기를 긴급 투입해 총 848명의 우리 국민과 가족을 한국에 성공적으로 데려왔다.

비행기가 투입됐지만 시내 교통은 물론 도시 간 교통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우한과 후베이성 각지에 흩어진 교민들을 공항까지 이동시키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교민들은 SNS 단체 대화방을 통해 길이 막힌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회로를 신속히 공유했다. 그래도 길이 막힌 곳은 우한 총영사관이 현지 지방 정부에 일일이 연락을 취해 길을 열어주도록 조처를 했다.

오랜 삶의 터전인 우한에 남기로 한 교민들은 도시 곳곳을 자기 차를 끌고 다니며 전세기에 타려는 교민들을 집결 장소와 공항으로 실어날랐다.

 

눈물겨운 사투와 동포애로 뭉친 이들

 

우한에 역주행 부임한 강승석 주 우한 총영사
우한에 역주행 부임한 강승석 주 우한 총영사. [출처=연합뉴스]

외교관을 포함한 대부분 외국인이 우한을 탈출하는 상황에서 길을 거슬러 우한에 부임한 강승석 총영사는 한중 두 나라 모두에서 화제가 됐다.

퇴직 외교관인 강 총영사는 공석이던 우한 총영사에 지원해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하던 지난 220일 새벽 구호물자를 실은 화물기를 타고 단신 부임했다.

미국과 영국이 우한 총영사관을 폐쇄한 상황에서 교민 보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거슬러 부임한 강 총영사는 현지에 남은 100여명의 우리 교민은 물론 중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잉융(應勇) 후베이성 당서기는 이례적으로 부임 다음 날인 221일 강 총영사를 초청해 각별한 감사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최덕기 후베이성 한인회장은 "(강 총영사가) 다들 겁이 나서 오지 않을 험지에 부임해 얼마나 고군분투를 했는지 모른다""교민들 사정을 알아본다고 사흘이 멀다고 나에게 전화를 해 세세한 것까지 의논하는데 우리 공직 사회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한 총영사관에 근무 중인 영사는 강 총영사 외에 부총영사까지 모두 4명 뿐이었다.

운전사와 행정 직원 등 중국인 현지 직원들까지 코로나19로 출근을 하지 못하는 사이 영사들이 직접 마스크 등 우리 정부의 긴급 지원 물자와 함께 교민들의 약 배달에까지 나선 것이었다.

우한 총영사관의 한 영사는 "전세기를 띄우고 나서는 교민들 가정에 필요한 물건을 나르는 일이 가장 바쁜 일 중 하나였다"고 돌이켰다.

총영사관에 남은 강 총영사 등 5명의 외교관은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자택에서 모두 나와 아파트에 모여 살며 공동생활을 하며 총영사관에 출퇴근하며 업무를 봤다.

이들은 매일 점심때마다 총영사관의 간이 식당에서 함께 라면이나 김치찌개를 끓여 즉석밥과 함께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강 총영사는 "저까지 다섯 명이 공관에서 라면, 김치찌개, 된장국을 끓여 먹어가면서 동고동락을 했는데 정말 마음이 아려오면서도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이해와 신뢰가 깊이 쌓여 교민 보호라는 저희 책임을 더 잘 풀어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진원지 부임을 자원한 강 총영사는 우한으로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사람인데 약간의 마음속에 그런 건 있었습니다만 제가 공무원이잖아요. 정부에서 명령을 내면 가는 거죠. 전쟁이 나서 군인에게 가라면 따르는 것이 아닌가요. 저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겠죠. 정부에서 모든 상황을 파악해 저를 보내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남은 동포를 위한 화상 처방, 영사들이 직접 약 배달

 

철수를 마다하고 우한에 남아 교민들을 치료한 의사 이상기 씨
철수를 마다하고 우한에 남아 교민들을 치료한 의사 이상기 씨. [출처=연합뉴스]

귀국 전세기 탑승을 포기하고 우한에 남아 교민들의 건강을 돌봤던 의사 이상기 원장도 있었다.

이 원장은 당초 지난 212일 출발한 3차 전세기 탑승을 신청했지만 100명이 넘는 우리 교민들이 우한에 남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우한에 남았다.

우한 봉쇄로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원장은 화상 통화 등으로 우한 등 후베이성에 남은 교민들을 진료했다.

최 회장은 "우한에 남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불안했던 건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는데 이상기 선생이 계신 것만으로도 받고 견딜 수가 있었다"고 각별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 원장이 원격 처방을 하고 나면 우한 총영사관의 영사들이 대한의사협회에서 보내온 약을 환자의 집에 일일이 '배달'을 했다.

우한은 48일 봉쇄 해제를 계기로 점차 정상화 수준을 밟아 나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오랜 기간 우한에 살아온 우리 교민들이 생업을 정상화하는 데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강 총영사는 "포스코와 SK 등 우리 대기업의 우한 내 공장은 속속 조업을 재개하고 있지만 요식업을 포함한 자영업에 종사하는 교민들이 사업을 정상화하는 데까지는 시간도 걸리고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우리 국민들은 강 총영사와 이상기 의사를 비롯한 우한 교민들이야말로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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