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롯데 창업주 시대가 마감됐다. [제공=롯데그룹]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롯데 창업주 시대가 마감됐다. [제공=롯데그룹]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노환으로 별세하면서 국내 대기업의 창업 1세대가 사실상 마감됐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나이는 향년 99.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신 명예회장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잇달아 별세했다. 구자경 회장은 창업회장은 아니나 사실상 한국 재계의 창업세대로 꼽혀 왔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 중 전날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으며 이날 오후 429분께 신동빈 롯데 회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고인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로 성장시킨 '거인'으로 평가받는다.

1921(주민등록상으로는 1922) 경남 울산에서 55녀의 첫째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했다.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2차 대전 때 공장이 전소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뒤 껌 사업에 뛰어들었고 1948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롯데는 초콜릿,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한일수교 후 롯데제과로 한국서 사업 영역 크게 확장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켜 성공을 거두자 신 명예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고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추어 가자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가 일으킨 건설사업도 수두룩하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 건설도 신 명예회장이 1987"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시작돼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다.

고인은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거대 그룹을 이끌면서 명암이 엇갈리는 등 비판도 많았다.

소유와 경영을 동일시한 신 명예회장의 경영 방식이 두 아들 간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낸 말년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재판과 소송에 휘말리면서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롯데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한 편에 선 신 명예회장은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하면서 형식상으로도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뗐다.

지금은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부친인 신 명예회장과는 다른 스타일로 롯데그룹을 개혁하고 있다.

한편 왕자의 난 중에 급격히 노쇠하면서 신 명예회장이 경영에 개입할 능력이 있는지를 의학적으로 판단해 보려는 시도도 있었고 명예도 크게 실추됐다.

경영권 갈등 속에 정신건강 문제에다 90대 고령에 수감 위기에 처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법원은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며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 명예회장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있다. [제공=롯데그룹]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 명예회장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있다. [제공=롯데그룹]

경영권 갈등 속에 마지막까지 마음 고생 심해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20186월 법원 결정에 따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처를 옮긴 이후 건강이 악화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장례는 롯데그룹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롯데지주 황각규·송용덕 대표이사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경영권 분쟁 등을 겪으면서 신 명예회장의 롯데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나오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며 열정을 바친 그의 기업가 정신은 롯데그룹 성공의 원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롯데쇼핑을 통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의 유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또한, 관광산업이 주목받지 못하던 1970년대부터 호텔롯데를 세우고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를 건립했다. 잠실에 세워진 제2롯데월드 역시 신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격호 명예회장은 맥락을 제대로 포착해 내는 ''과 앞을 먼저 내다보는 안목이 대단한 사업가"라며 "유통과 관광, 화학까지 그 시대에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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