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최은희씨가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은희는 16일 낮 12시께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신장 질환 등을 앓으며 오랜 기간 투병해온 최은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지만 끝내 건강을 되찾지 못했다. 

고인의 빈소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926년 경기도 광주 태생인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새로운 맹서'(1947)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서구적이고 개성 있는 미모와 연기력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군림했고, 1954년에는 주한미군 위문 공연 차 방한한 할리우드 톱스타 메릴린 먼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했다.

고인은 '새로운 맹서'를 찍으면서 나이 18세때 촬영감독 김학성 씨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헤어지게 된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인연을 맺은 최은희는 1954년 결혼에 골인했다.

고인은 전성기에 1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갔다. 1967년 안양영화예술학교 설립·교장 겸 이사장을 맡았고, 극단 배우극장을 직접 운영하며 후배 연기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23년간 이어진 고인과 신 감독의 협업은 1976년 이혼으로 끝이 난다. 

이혼한 고인은 자신이 운영하던 안양영화예술학교의 해외 자본 유치차 1978년 1월 홍콩에 갔다가 홍콩 섬 해변에서 북한으로 납치된다. 

납북 6년째인 1983년 3월 3년 만에 김정일로부터 연회에 초대받은 고인은 그 자리에서 신 감독을 만나게 된다. 신 감독은 고인이 납북된 그해 7월 사라진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에 갔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 일각에선 신 감독의 자진 월북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 감독과 최은희는 김정일의 신뢰를 얻어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10년 넘게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귀국했다. 

이 사건으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제적인 권력남용 사례 10건 중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1년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폭행 미수 사건과 관련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국제적인 권력남용 사례 10건을 선정했고, 이 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여성들을 납치해 첩으로 삼아온 행위가 권력남용의 7번째 사례로 소개됐다. 

이날 ‘타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축첩행위를 7번째로 소개하면서 “김 위원장의 실책 중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권력을 남용해 강제로 여성들을 첩으로 삼은 것”이라며 “특히 여성들을 납치하기 위해 남한에 특공대를 보내고, 영화배우 최은희까지 납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여러 차례 결혼해 모두 5명의 자식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 외에도 9명의 자식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또 이날 ‘타임’은 가장 대표적인 권력남용 사례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승리를 위해 비밀공작반을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침입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꼽았다.

권력남용 2위와 3위는 인도의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스캔들과 데니스 코즐로우스키 전 타이코 대표의 공금 착복 사례가 차지했고, 4위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족벌주의 행태가 꼽혔다.

또, 부하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모셰 카차브 전 이스라엘 대통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스캔들도 권력남용 사례로 꼽히기도 했고, 지난해 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를 시인하고 사임한 벨기에의 로저 반겔루위 전 주교도 불명예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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