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괴물'로 고은 시인(85)으로 추정되는 원로시인 'En 선생'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57)이 고은 시인의 성추행 사실을 추가로 폭로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외신을 통해 성추행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일(현지 시각) 영국 출판사인 블루덱스 북스(Bloodaxe Books)의 고은 담당자인 네일 아슬리씨를 통해 받은 고은의 성명서 내용을 보도했다. 

고은은 성명서에서 "최근에 제기된 의혹들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자신은 이미 자신의 행동이 초래했을지 모를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뉘우쳤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나는 일부 인사들이 나에 대해 제기하는 상습적인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고은은 또, "사실과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외국인 친구들에게 '나는 나의 아내와 나 자신에게 부끄러울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단언한다"며"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명예를 유지하면서 계속 집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영미 시인은 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괴물에 대해 매체를 통해 한 말과 글은 사실"이라며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 기구가 출범하면 나가서 상세히 밝히겠다"고 반박했다. 

고은의 성추행 의혹은 최영미 시인이 지난해 12월 발행된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한 총 7연 27행의 시 '괴물'을 통해 제기한 뒤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불거졌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달 27일 'En선생'의 과거 행위를 구체적으로 담은 1000여 자 분량의 원고를 동아일보에 보냈다.

동아일보는 "이 원고가 최 시인이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입이 더러워질까 봐 말하지 못하지만 때가 되면 제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성추행 상황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했던 바로 그 내용"이라며 "성추행 악습에 대한 문단의 반성을 촉구하는 최 시인의 의사를 존중해 원고 전문을 공개한다"고 보도했다.

최 시인은 동아일보에 보낸 원고에서 "반성은 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면서 '그때'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상세히 적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일어났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의 한 술집이었다. 문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한다. 

최 시인이 선후배 문인과 술자리에 참석했던 당시 '원로시인 En(고은)'이 들어와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만졌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최 시인과 다른 젊은 여성시인을 향해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하지만 동석한 문인 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집에 일행 말고 다른 손님도 있었지만 함께한 남성 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최 시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최 시인은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며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라고 반문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하 최 시인이 동아일보에 보낸 원고 전문.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시인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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