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봄비에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내려앉은 4월 중순. 도예가 권태영 명장(59)을 만나기 위해 도자기의 고향 이천시 신둔면으로 향했다.
이천시 토박이인 권태영 명장은 “도자기 마을에서 나고 자라다보니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흙과 친해지게 됐다. 도예를 하는 친구의 아버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본격적으로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늘 흙과 함께 청춘을 시작했고 지금도 작업실에서 물레를 돌리며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권태영 명장은 “흙으로 세상을 빚는 도예의 매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며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제자 양성에 힘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도 반한 '청자투각 무궁화 문병'
1980년 새파란 청춘에 일찌감치 도예가의 길에 들어선 권태영 명장은 7년 전 의뢰받은 이중 투각 작품 ‘청자투각 무궁화 문병’의 완성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2016년 이천 도자기 성형부문 명장에 선정됐다.
그의 이중 투각 작품은 비취빛 도자기 안에 또 다른 도자기를 만들어 도자기가 겹으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겉에는 우리나라를 표현하는 작은 무궁화가 수백 개씩 붙어 있는 정성스러운 작품이다.
"이 도자기를 제작할 때 눈도 많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도 꽤 받았어요. 세밀하기도 하지만 이중 투각 기법이 정교하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정말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권태영 명장은 당시 5점의 작품을 의뢰 받았고 이 중 하나가 미국의 지미 카터 전(前) 대통령에게 선물됐다. 이후 그의 작품은 이명박 전(前) 대통령 및 다수의 유명인사 관련 행사에 귀한 선물로 선사됐다.
특히 그의 작품은 국보 제68호로 지정된 13세기 고려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 생활자기 등에 퓨전 스타일 접목해 전 세대의 사랑 받다
권태영 명장의 주특기는 ‘물레성형’이지만 2014년 이중 투각 한국예총 문화단체에서 ‘투각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투각 작품을 한 점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1주일에서 길게는 3~4개월 도 한다.
이렇게 고된 작업에도 불구하고 권태영 명장은 도예가라는 직업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도예가가 최고의 직업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아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정신적으로도 늘 풍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권태영 명장은 이어 “여태껏 청자를 고집하다보니 경제적 어려움도 생겼다. 3년 전부터는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고 있다”며 “생활자기 등에 퓨전 스타일을 접목하니 젊은층,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백자는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 다양한 작품과 제자 양성으로 '도예 부흥' 꿈꾼다
"이천 도예가들의 큰 연례행사인 '이천도자기 축제'가 올해는 일주일이나 줄었어요. 관광객들이 와서 도자기도 많이 사가고 이천 쌀밥도 드시고 가면 참 좋은데 말이죠.”
권태영 명장은 “이천시의 도예가들은 도자기 축제에서 작품도 출품하고 위상도 재정립한다. 또한 매년 이천 쌀 축제에서는 작품을 판매해 결식아동을 위한 기금으로 전달하고 있다”며 “최근 들어 도예가들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 명장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자를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도 일산에서 중학생이 고모와 찾아와서 일주일에 두 번 물레 수업을 해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지요. 일산이면 엄청 먼데 말이죠. 그 정도의 정성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권태영 명장은 이같이 말하며 “도자기 예술의 활성화를 통해 이천시가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되는 요람이 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를 능가하는 명장이 도자기의 고장 이천에서 탄생되길 기대한다는 권태영 명장의 바람이 이뤄지는 날을 기다려본다.
■ 권태영 도예가는?
1959년생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수료
1980년 도예 입문
1995년 로원도요 설립
2007년 문경 막사발 공모전 특선
2009년 대한민국 녹청자·현대도예 공모전 입선
2010년 목포도자기 전국공모전 입선
2010년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입선
2010년 김제 도자공모전 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