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10일 경기도 서울사무소에서 소상공인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안법(전기안전기본법) 폐지 모임 대표자 간담회’를 열었다. 

“전기안전기본법은 청년창업자, 소상공인의 싹을 자르는 동시에 시대의 화두인 경제민주화를 역행하는 낡은 규제다.”

경기도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이날‘전안법 폐지 모임 대표자 간담회’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기안전기본법(이하 전안법)을 강하게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 지사는 “제 아들이 중국에서 인턴을 하면서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이 법에 대해서 ‘맨땅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법’이라고 말했다”며 “전안법은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거나 자금이 많은 대기업에는 크게 영향이 없다. 하지만 청년 창업인들과 소상공인에게 직격탄인 규제”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 치이고 중국이 추격해오는 샌드위치 상황에서 결국 한국의 미래는 청년들의 창의력과 문화콘텐츠, 디자인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전안법은 이러한 미래 산업의 싹을 없애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지난 1월 28일 시행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은 TV와 에어컨 같은 전기용품은 물론 의류·귀걸이·신발같이 사람의 신체에 접촉하는 모든 생활용품에 대해 정부의 인증을 받도록 하는 법이다.

이에 따라 기존 전기제품과 공산품뿐만 아니라 의류와 잡화 등의 품목도 KC(국가통합인증마크)인증을 받아야 한다.

수입 상품의 경우에 수입업체가 인증을 받아야 하고, 온라인에서 상품을 팔 때 이런 KC인증서를 게재해야 한다. 인증받지 않은 제품을 팔다가 적발되면 한 건당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 청년창업가·영세제조업체 덮친 인증 비용 폭탄

정부는 전안법의 취지로 옥시 사태 이후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주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전안법 폐지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안영신 글로벌셀러연구소장은 “패션과 잡화 등은 유행에 맞춰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인증을 받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발생한다”며 “이 법이 시행되면서 오늘 간담회에 참석한 소상공인들 모두 범법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온 한 업체 대표는 “전안법 시행 후 원부자재값이 이미 2~3배 올랐다”며 “옷 한 벌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제조에 쓰인 원단의 종류별로 모두 다 받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30~40만원은 기본”이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 “문제는 이미 쌓여 있는 재고들도 KC인증을 받고 팔아야 하는데 팔 수가 없다”며 “결국 사업을 접으라는 소리”라고 강조했다.

동대문시장의 업체들은 원단 1개 품목당 5~6만원의 인증비가 들어갈 것이 불가피해진다고 설명했다. 원단업체가 인증을 해주면 다행이지만 비용을 함께 부담하지 않으면 최종 판매 직전의 제조업체가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한다.

이에 정부는 내년 1월 1일로 의류 등 생활용품에 대한 시행을 1년간 유예하긴 했지만 중소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의류소매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1년간 유예가 됐다고 하지만 인증서를 보관하고 게시할 의무만 유예된 것이지 인증을 받아야 할 의무는 살아 있다”며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신고하면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전안법과 관련해 폐지, 개정 등 의견이 분분한데 국회에서 시행령을 개정해도 산업부장관이 고시에서 변경하면 다시 원위치로 돌릴 수 있다고 들었다”며 “현실성 없는 이 법은 개정이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현실성 있는 새로운 법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1인 창업·디자이너·구매대행 싹 말리는 정책

대기업의 옷값이 비싼 이유는 그간 KC인증을 받아 옷감 원단부터 모든 것을 다 인증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물건을 팔려고 하는 이들은 모두 다 KC인증을 받아야 한다. 결국 소품종 소량생산업자는 인증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천에서 가방을 제작해 판매 중인 B씨는 “신진 브랜드가 대기업과 경쟁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이 신상품을 분기별로 내놓을 때 저는 한 달에 10개씩 신상품을 내놓아야 그나마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전안법이 시행되면 인증비용 부담으로 이를 할 수가 없게 된다”며 “결국 대기업의 틈새를 파고 들어 승부하는 1인 기업가와 디자이너의 싹을 없애버리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패션창업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C씨는 “동대문과 남대문에서는 일주일에 2~3개씩 신제품을 내고 있는데 과연 인증기관이 이를 따라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디자인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다양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이 규제는 다양성을 죽이고 산업 전체를 획일화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 구매대행업체 대표는 “26세에 300만원으로 창업해 현재 억단위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하지만 전안법 시행 후 구매대행업체는 모두 범법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모든 상품에 대해 KC인증을 받으라는 것은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것”이라며 “이 법으로 구매 대행이란 직업이 사라지면 단순히 판매업자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그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남 지사는 “결국 옥시와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에 대해서는 강화를 하되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법을 현실화하자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며 “국민의 안전은 지켜야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규제 역시 없애야 한다. 경기도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바로 준비해서 하겠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굿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